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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인생 윤성준 씨 `길마차`는 달려간다˝

- 알콜중독․노숙자에서 ‘봉사하는 서민갑부’가 되다 -
CBN뉴스 기자 / 입력 : 2016년 04월 04일
↑↑ 윤성준씨
ⓒ CBN뉴스 - 경주
[김영길 기자]= 세상살이 누군들 사연없고 곡절없는 인생 누가 있겠냐마는 윤성준(60세) 씨의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은 유별나다.

영진전문대학 기계공학과를 나와 포항에 있는 영화배우 신성일 씨의 배다른 형인 강신호 회장의 삼일그룹 건설회사에 다닐 때만 해도 남들과 같은 그저 평범한 인생이었다. 회사에서는 능력을 인정받는 사원이었다.

그런데 그야말로 인생이 꽈배기처럼 꼬이게 된 것은 회사를 나와 건축업을 하면서 IMF 당시 부도를 얻어맞고 큰 돈을 몽땅 날리고부터였다.

이때부터 윤 씨의 인생은 그야말로 추락하는 새는 날개가 없듯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달랑 하나 남은 셋방에서 술에 의지한 채 술독에 빠져 나날을 보낸 지 6개월만에 완전히 알콜 중독자가 됐다. 하루 24시간 취해 있었고 1년에 365일 취해 있었다고 한다.

참 대단한 술꾼이다. 그러다가 안강에 있는 병원에 입원, 어느 정도 치료를 받고 병원을 나왔지만 이미 윤 씨가 발붙일만한 사회는 아니었고 받아주는 곳은 아예 없었다.

또 다시 입에 술을 대기 시작한 윤 씨는 이제는알콜 중독자이자 노숙자로 변했다. 셋방마저 없었기 때문이다. 경주.포항.구룡포.대구 일대를 돌아다니는 떠돌이형 알콜중독 노숙자가 된 것이다.

그러기를 2년. 알콜 중독자에게 흔히 있는 환시현상도 겪었다. 온 몸에 스물스물 기어오르는 벌레를 떨치기 위해 칼로 온 몸을 자해하는 환시현상이었다. 그러기를 2-3년여 세월. 끝없는 추락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윤 씨는 정신을 놓으면 죽는다는 생각에 자신의 심지와 의지를 붙들었다고 하니 팔자인지 뭔지 여하튼 본인이 생각해도 대견할 만큼 삶에 대한 마지막 끈은 놓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보니 경주 새빛병원. 또 6개월여의 병원신세를 지면서 그래도 삶을 놓지 않은 이유는 아들 때문이었다고 하니 천륜은 어쩔 수 없는가보다. 아들보기 부끄러워 술을 끊기로 한 것이다. 청산가리를 갖고 다니면서 술이 유혹할 때마다 꺼내 들기를 수십번. 완전히 술을 끊었다고 한다.

술과 싸워 이긴 것이다. 아내와 헤어진 것은 벌써 몇해 전이다.
이 때부터 윤 씨의 제 2의 인생이 시작된다. 성건동 해동주유소 옆에서 오뎅장사 겸 포장마차를 운영하면서 세상과 더불어 살게 된다.

하루 매출 30만원 이상을 올리는 제법 잘 나가는 포장마차의 주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단골손님이 점점 늘어가면서 매출이 점차 늘어날 즈음 포장마차에 손님을 뺏기는 것을 시기하는 일부 점포의 고발이 잇따르면서 그마져도 여의치 않았다.

단속 나온 공무원에게 사정사정하면서 장사를 계속했으나 이도 한계가 있어서 자리를 옮길까 고민하던 중에 현재의 땅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문을 듣고 바로 계약을 했다는 것. 현대조경 권상학 사장의 땅이었는데 권 사장도 윤성준 씨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3천만원을 깍아 주었다고 하니 모든 게 인연이 있다는 느낌이다.

도움의 손길은 또 이어졌으니 5억에 가까운 돈이 있을 턱이 없던 윤 씨에게 우성새마을금고 한영훈 이사장이 선뜻 대출을 해주겠다고 했단다. 윤 씨의 성실함을 눈여겨보고 있었던 한 이사장의 배려였던 것이다.

이 때가 2000년. 이제 꿈에도 그리던 건물을 갖게 된 윤 사장은 모든 게 주위에서 도와 준 사람들의 덕분이라는 생각에 자신을 있게 해 준 사회를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봉사를 하기로 결심하고 ‘노인 무료급식’을 시작했다.

지금은 여러 단체에서 무료급식을 하지만 당시만 해도 매우 드물었을 때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올해 16년째. 매주 일요일 점심시간이면 눈이 오나 비가오나 한 번도 빠짐없이 16년 동안 한결같이 무료급식 봉사를 해 왔으니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매주 메뉴도 바꿀 뿐만 아니라 때론 삼겹살도 구워준다. 매주 이 곳을 찾는 이는 80~100여명. 평균 80명이라고 해도 16년 동안 이 곳을 찾은 노인이 6만명이 넘는다. 한끼 재료비를 2천원으로 치면 1억 2천만원을 웃돈다.

이젠 소문이 나서 근처의 노인뿐 아니라 멀리 다른 동네에서도 이곳 ‘길마차’를 찾는다는 것. 이젠 매주 일요일이면 근처 노인들이 습관처럼 찾는 곳이 되어 단순히 밥만 먹는 게 아니라 노인들의 쉼터이자 사교장으로의 역할까지 되고 있다.

매주 100여명의 노인들을 상대로 점심 대접을 한다는 소문이 나자 자연스럽게 자원봉사자들이 나서서 음식을 날라주고 심지어 설거지까지 해 준다고 하니 이래서 세상은 아름다운가보다. 모자가 함께 나오거나 온 식구가 함께 나와 봉사를 해주는 가족도 있단다. 서호대 시의원과 배진석 도의원도 자주 참석하여 이 곳에서 자원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윤성진 사장이 하는 봉사는 노인 무료급식에 그치지 않는다. 봉사에 관심이 많은 뜻있는 사람들을 모아 ‘길동무’라는 단체를 만들어 매월 10만원씩 성금을 모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 지도 7년 가까이 된다.

그 동안 장학금을 받아 공부하여 대학에 가거나 성실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이가 적지 않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찾아오거나 편지를 보낸 올 때면 한없는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는 윤 사장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다는 윤 사장은 그러나 고등학생 시절에는 그리 착한 학생은 아니었던 듯. 술먹고 사고치고 집에 들어 온 자식에게 그 당시 돈 50원을 주며 사이다를 사 마시라던 아버지를 잊지 못하는 6남 1녀의 막내다. 새 반려자 신민숙 씨를 만나 가정도 새로 꾸렸다.

새 아내를 만난 곳도 이곳 ‘길마차’라니 길마차는 윤 사장의 운명을 바꿔놓은 장소가 된 셈이다. ‘길마차’는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일한다.

이젠 과거의 이리저리 쫒겨다니던 포장마차가 아니라 명실공히 땅과 건물을 소유한 포장마차 사장이다. 몇 년 전에는 옛날 포장마차를 할 당시 쳐다보면서 꿈에도 그리던 건물도 매입했고 황룡동에 집도 하나 마련했다. 제법 돈도 모은 셈이다.

채널A에서 제작하는 ‘서민갑부’라는 프로그램에서 촬영하기로 예정되어 있단다. 부자여서가 아니라 희망을 잃고 사는 사람들이 자신처럼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사람도 자기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이제는 알콜중독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이나 병원 등에 초청되어 일콜중독 경험과 치료에 관한 강연도 한다는 윤 사장은 제법 박수를 많이 받는다고 자랑하며 등산모자를 바로 잡는다. 윤 사장은 항상 등산모를 쓰고 있다. 그의 트레이드 마카가 된 셈이다.

‘알콜중독 노숙자’에서 ‘봉사하는 서민갑부’까지 인생역전 로또가 아니라 ‘윤성준의 인생 역전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CBN뉴스 기자 / 입력 : 2016년 04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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