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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6세기 신라 석비 재조명` 신라학 국제 학술대회 개최


이재영 기자 / youngl5566@naver.com입력 : 2018년 08월 30일
↑↑ 국립경주박물관
ⓒ CBN뉴스 - 경주
[CBN뉴스=이재영 기자] 율령이 반포된 6세기 신라의 석비를 새롭게 조명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은 신라학 국제학술대회 “6세기 신라 석비(石碑)의 세계”(8.31.금)를 개최한다. 6세기는 불교공인, 율령반포와 함께 동해안과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등 영토 확장을 거듭하던 역동적 시기였다.

노용필 한국사학연구소 소장·하시모토 시게루 니혼죠시日本女子 대학 교수 등 국내외 중진·신진 전문연구자 6명이 발표에 나서고, 이영호 경북대 교수를 비롯한 이 방면 정상급 학자 8명이 집중 토론에 임한다.

석비 제작은 분업화되어 있었다_노용필(한국사학연구소 소장)
먼저 진흥왕순수비 연구의 일인자인 노용필 한국사학연구소 소장은 석비 제작과 조영 과정에 여러 단계의 분업이 이루어졌음을 밝힌다.

글을 쓰는 전문가, 글씨를 돌에 새기는 전문가, 석비를 건립하는 전문가로 분업화되어 있었으며, 그 공정이 점차 간소화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 신라 사람들은 불교경전을 사경寫經하면서 관련 서체, 오늘날 영어사전에 비견할 수 있는 옥편玉篇 등 자서字書류가 널리 유행하게 되었음을 추적하였다. 석비 제작의 과정을 파헤친 최초의 연구로서 신라 석비 문화를 조명한 걸작이다.

신라 사람들도 줄임말을 썼다_하시모토 시게루(니혼죠시日本女子 대학 교수)
남산신성의 축성을 위해 전국 2백여 개의 성城과 촌村에서 똑같이 7인의 책임자가 동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시모토 니혼죠시日本女子 대학 교수는 현존하는 남산신성비 9개를 정밀하게 분석하여, 군의 윗사람이란 뜻인 “군중상인郡中上人”을 “군상郡上” 혹 “군상인郡上人”이란 줄임말로 바꿔 쓰기도 했음을 밝혀냈다.

이를 토대로 종래에 군상촌주郡上村主가 군중상인郡中上人과 동의어라고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이는 군중상인郡中上人인 촌주村主라는 의미라고 바로 잡았다. 또 남산신성비 축성에 전국에서 노력 동원된 실상과 함께 성을 쌓을 때, 얼굴돌(면석面石), 가슴돌(흉석胸石), 큰돌(불석不石), 작은돌(소석小石)의 네 가지로 기능을 나누어 조립하였음도 고증한다.

국가발전에 따라 관리의 직급도 변화·발전하였다_선석열(부경대학교 교수)
신라 관등 연구의 권위자인 선석열 부경대 교수는 6세기 석비에 나타난 관리의 등급 즉 관등官等제도를 정리하였다. 관리의 직급 제도가 체계적 발전하는 것은 영토 확장을 배경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우산국 정복과 동해안, 영남내륙과 한강유역으로 영토가 확대되면서 왕경 출신에게 주는 직급인 경위京位가 체계적으로 정비되고, 새로 편입된 지역민을 대상으로 하는 직급인 외위外位도 성립하였다는 것이다. 석비 속에 보이는 관등의 변화 발전이 국가 발전의 배경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398자임을 못 박아 변조를 방지한 봉평비 이용현(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이용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울진봉평신라비(국보242호)에서 世中字(세중자)398을 읽어내고 이것이 비석에 새긴 글자 수를 명기한 것인데, 이는 명문을 더 쓰거나 고치는 것을 원천 봉쇄하기 위한 것이라고 새롭게 주장하였다.

종래 字(글자 자)를 子(아들 자)로 읽어 노력 동원된 인원수로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봉평비 분석을 통해 중앙에서 내린 명령이 교사敎事라는 형태로 지방에 관철되는 율령시스템을 종합적으로 조명한다.

대등大等은 임시직이었다_양자량(한국역사연구회 총무)
양자량 한국역사연구회 총무는 적성비, 마운령비, 창녕비를 비교 분석하여 대등은 고정적인 집단이 아닌 사안에 따라 왕에 의해 다르게 구성되는 임시적인 집단을 의미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런 까닭에 왕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으며, 국왕 중심의 집권화가 가속되면서, 상대등上大等과 같은 모대등某大等으로 분화되었음을 설명한다. 주요 직위였던 대등을 통해 신라 중앙의 권력 구조를 밝히는 중요한 열쇠가 되는 성과로 기대된다.

신라 6부의 변화를 석비 속에서 추적_이성호(동국대학교 강사)
이성호 동국대 강사는 금석문 분석을 통해, 501년과 503년 단계에 탁부喙部와 사탁부沙喙部 2부가 신라의 국가 행정을 장악하였고, 다른 부는 부분적으로 참여하는 2부 중심의 운영체제였음을 확인하였다.

학계 원로와 중진들의 격론 예정
위 6인의 주제발표에 대해 이영호(경북대) 교수를 좌장으로 주보돈, 이문기(이상 경북대) 교수를 비롯하여 이수훈(경북대), 강종훈(대구가톨릭대), 윤진석(계명대), 정동준(성균관대), 홍승우(명지대) 교수가 종합토론에 참여하여 6세기 신라 석비가 보여주는 역사상에 대해 2시간 반 격론을 벌일 예정이다.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6세기 신라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재영 기자 / youngl5566@naver.com입력 : 2018년 0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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