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보물 제62호 선도산 마애불에서 삼국시대 명문 발견
-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장, 5행 5열 중 8자 판독 - - 우리나라 석불 명문 중 가장 이른 시기 추정 -
이재영 기자 / youngl5566@naver.com입력 : 2018년 06월 04일
| | | ↑↑ 명문 부분(사진-오세윤 문화재 전문 사진작가 제공) | ⓒ CBN뉴스 - 경주 | | [CBN뉴스=이재영 기자] 경주시는 보물 제62호 선도산 마애불의 오른쪽 암벽에서 약 1.3m 떨어져 나와 성모사(聖母祠) 뒷편 처마아래까지 밀려온 바위면에서 삼국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보이는 명문이 발견됐다고 4일 밝혔다.
이 명문은 불교고고학 전공인 박홍국 교수(위덕대 박물관장)가 유적답사 중 글자가 있는 것을 보고 전공학자들과 함께 조사한 결과, 가로 5행, 세로 5열 중 8자를 판독했다.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1∼5열로 번호를 붙이면, 1열 1행에 운(云)으로 보이는 글자가 있다. 2열 1행은 거(居), 5행은 미(弥)를 새겼고, 3열과 4열 5행에 각각 문(聞)과 사(思)가 있다.
가장 글자가 많이 남은 열은 5열이다. 5열 3∼5행에는 차례로 아(阿), 니(尼에서 匕 대신 工), 신(信)이 보인다.
글자의 크기는 세로 3.5~4.5㎝이고, 글자 사이의 간격은 2~3㎝, 옆 글자와의 간격은 약 4㎝이다.
명문은 능숙한 솜씨로 새긴 해서체로 가로 3m, 세로 2.8m, 높이 2.5m의 바위 동쪽면에 남아있는데, 표면 박락과 파손이 심한 상태이다. 더구나 후대에 빗물이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길이 110㎝, 너비 6㎝, 깊이 3㎝의 홈을 파내면서 많은 글자가 없어졌다.
남은 부분이 전체 명문의 중간 부분으로 짐작되기 때문에 서두에 새겨지는 연호(年號)나 간지(干支)는 보이지 않는다.
| | | ↑↑ 선도산마애불 삼국시대 명문 판독 글자(5행 5열 중 8자) | ⓒ CBN뉴스 - 경주 | | 판독된 명문 중에서 ‘미(弥)’는 선도산마애불의 본존이 아미타여래상인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이며, ‘아니(阿)’는 ‘아니(阿尼)’의 이체자(異體字)로 대구 무술오작비(戊戌塢作碑 : 578년, 신라 진지왕 3년)‘에도 있는데, 여성 승려를 뜻하는 호칭으로 삼국사기에도 2군데 보인다.
이 명문을 찾은 박홍국 교수는 명문의 위치로 보아 마애불의 조상명문으로 보면서 단석산 신선사 조상명문과 더불어 우리나라 석불 명문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이 정도로 잘 새긴 명문이 있다는 것은 당시 선도산마애불 조성에 대단한 공력이 투입되었음을 증명하는 자료라고 말했다.
이 명문에 대하여 함께 조사한 이영호 교수(신라사, 경북대)는 “이번에 발견된 명문은 비록 일부 글자만 판독된 상태지만,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진평왕대(597~632년) 선도성모 불사 관련 사실(史實)이거나 700년 전후에 조성된 마애삼존불의 조상명문(造像銘文)일 가능성이 높은 중요한 금석문”이라고 말했다.
하일식 교수(고대사, 연세대)는 “선도산 명문 중 ‘아니(阿尼)’ 는 신라의 불교 공인 직후부터 비구니의 출가가 이루어졌고, 그들이 여러 불사를 주도하거나 관여하는 등 당시 여성의 사회활동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라고 밝혔다.
한편, 정현숙 박사(서예사, 원광대)는 “명문의 글씨는 힘차면서 품격 있는 북위풍 해서로, 경주 남산신성비 제10비(591년, 신라 진평왕 13년), 함안 성산산성 출토 ‘임자년’ 목간(592년), 하남 이성산성 출토 ‘무진년’ 목간(608년)의 서풍(書風)과 흡사하여 진평왕대인 6세기 말 7세기 초반 신라의 북위 서풍 수용을 보여 주는 의미 있는 서예사적 자료”라고 평가했다.
한편 경주 선도산 정상(해발 390m) 가까운 안산암 절벽에 높이 6.85m의 본존불과 화강암으로 따로 조성된 협시보살(4.62m · 4.55m)이 있는 이 마애불은 경주 시내를 내려보는 곳에 자리한 기념비적인 삼국시대 거대 석불이다. |
이재영 기자 / youngl5566@naver.com 입력 : 2018년 06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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