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전시품 진열(정면) | ⓒ CBN뉴스 - 경주 | | [CBN뉴스=이재영 기자]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는 공동으로 사천왕사四天王寺 녹유신장상綠釉神將像(녹유신장벽전綠釉神將壁塼) 3가지 유형을 15일(목)부터 오는 8월 5일(일)까지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 1층에 특집 진열한다.
경주 사천왕사지 발굴이 시작된 지 100년. 이 전시는 오랫동안 각각 다른 기관에 떨어져 보관되던 7점의 파편을 처음으로 제 짝을 찾아 복원하여 최초 공개하는 자리이자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2017년 7월 27일에 체결한 학술교류 협약의 성과이기도 하다.
큰 눈과 콧수염, 날개가 달린 투구와 화려한 갑옷, 샌들 또는 맨발로 칼 혹은 화살을 든 무장 3명이 험악한 표정의 생령生靈을 깔고 앉아 우리를 주시한다. 세 무장의 앞을 지나가면 각기 달라져 보이는 장수의 표정에서 이들이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직감한다. 최초 발견 당시, 3종류의 벽전은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부서져 파편만이 옛 경주 사천왕사 자리에 묻혀 있었다.
사천왕사는 679년에 문무왕(재위 661~681)이 경주 낭산狼山 신유림神遊林에 건립한 호국사찰이다. 낭산 신유림은 신라를 공격하는 당唐의 해군을 막기 위해 승려 명랑明朗이 밀교 의식을 설행한 곳이기에 사천왕사는 신라의 중요 사찰이었다.
사찰은 고려 초까지 융성하지만 고려 말부터 쇠락하여 조선시대에 폐사되었다. 사천왕사에 대한 근대적인 재인식은 1915년 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이 서탑지에서 녹유신장벽전 파편 일부를 수습하면서 시작했다.
조선총독부는 1918년에 사천왕사 발굴을 개시했고 1922년부터 ‘고적발굴조사사업’의 일환으로 본격적인 발굴을 진행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 발굴로 사찰과 녹유신장상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광복 이후, 발굴 자료와 연구 결과를 토대로 벽전 파편을 조립한 결과, 최소 2종류의 신장(왼손에 칼을 든 신장과 활과 화살을 든 신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체계적이고 정밀하게 발굴하고 200여 점의 파편을 3D스캔하여 이를 참고로 3종류의 신장을 복원하고 이들이 사천왕사지 동·서 목탑 기단 벽면을 장식했음을 밝혔다.
사천왕사 녹유신장벽전은 3종류가 1세트로 탑 한 면에 2세트씩 동·서 목탑 기단에 16세트가 배치되어 벽전의 총 수는 48점이었음도 알게 되었다. 발굴 성과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에 수습되어 국립경주박물관이 보관하던 ‘왼손에 칼을 든 녹유신장상’의 하단부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서탑지 북편에서 발굴 수습한 상단부 6점이 동일한 상이었음을 확인하여서 이번 전시기획을 시작했다.
2017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7점의 파편을 조립하고 누락된 부분은 같은 유형의 ‘왼손에 칼을 든 녹유신장상’파편을 참고하여 이 벽전을 복원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정밀한 발굴과 그간의 복원 과정의 결실이며 쾌거였다.
자신의 진정한 짝을 만난다는 것은 우연이고 인연이며 행운이다. 2018년, 처음 사천왕사 발굴을 진행한 지 100년 만에 최초로 원래 짝을 찾아 복원된‘왼손에 칼을 든 녹유신장상’을 국립경주박물관이 전시한다.
사천왕사의 건립과 100년에 걸친 녹유신장상의 발굴 조사 약사,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정밀한 발굴, 탑 기단부 녹유신장벽전의 배치를 글과 영상으로 녹여낸다. 그리고 복원된 3가지 유형의 벽전이 탑지뿐만 아니라 금당지나 단석지 등 사역 내 여러 위치에서 출토된 같은 유형의 다른 벽전을 참고하여 복원한 것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3가지 유형의 녹유신장벽전은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 1층에 계속 전시한다. 월지관의 ‘월지 출토 금동판불상’(보물 제1475호)과 신라미술관의 ‘감은사지 서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보물 제366호) 사리외함을 장엄한 사천왕상도 함께 관람한다면 통일신라의 국제성과 신라인의 종교·예술적 역량을 최고로 표출한 3종의 신라문화유산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한 번에 즐기는 것이다. 관람객 대상 전시설명회는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2시 30분까지 신라미술관 1층 불교미술 제1실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