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 | ⓒ CBN 뉴스 | | [이재영 기자]= 국립경주박물관 개관 70주년 기념과 ‘실크로드경주 2015’ 특별전으로 열리는「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전이 특출한 신라 유물들이 즐비해 있지만,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이다.
2013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전시를 계기로 신라의 옷을 입은 금동반가사유상.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걸작인 국보83호 금동반가사유상이 ‘실크로드경주 2015’를 맞이하여 꿈에 그리던 고향 땅으로 금의환향(金衣還鄕)한 것이다.
이 특별한 전시를 기념하는 연계 학술행사가 지난 24일 경주박물관 세미나장에서 열렸다. 초미의 관심사인 반가사유상에 대해 고대 불교조각 전문가인 영남대 임남수 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임교수는 반가사유상이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의 간다라 지역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에 들어오면서 그 중요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반가사유상은 의자에 앉되 왼쪽 다리를 내리고 오른쪽 발은 왼쪽 허벅지에 걸치며, 오른 팔은 무릎 위에 괴고 오른 손을 가볍게 대어 생각에 잠긴 불상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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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반가사유상이 본격적으로 조성되는 시기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후반에 이르는 100년 간. 임교수는 금동반가사유상을 등신대에 가까운 크기와 뛰어난 조형성으로 운반과 전시에 용이하여 해외에서 국위를 선양하는 한국 미술계의 국가대표라고 재미있게 설명했다. 그는 83호상은 부드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인체 표현이 이뤄져 삼국시대 불상의 백미로써 7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깨달음을 상징하는 인도 브라가야의 항마촉지인(오른손을 풀어서 오른쪽 무릎에 얹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 불상이 새로이 수용되면서 반가사유상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는 이러한 금동반가사유상의 표현상 특징을, “옷자락은 사실적이며, 얼굴과 몸의 표현은 생동감이 넘쳐나고, 보관의 형태는 크라운(왕관) 양식이며 왼쪽 정강이에 옷주름 자락을 새기지 않고 정강이의 볼륨감을 표현하고 있다”면서 “입을 살며시 다물면서도 마치 깨달음의 희열이 배어나오는 듯 미소를 머금고 신라지역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을 지닌 개성파 국가대표 불상”이라 규정했다. 바로 ‘신라천년의 미소’라는 것이다.
신라 지역의 미륵반가사유상은 사찰보다는 화랑과 같은 개인 또는 특수집단에 의해 조성되고 예배된 불상이었으며, 반가사유상에는 중생을 구원할 미륵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화랑들의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다고 한다. 반가사유상의 쇠퇴는 화랑의 진퇴와 궤를 같이 했다는 것이다.
‘세밀가귀(細密可貴)’ 세밀함이 뛰어나니 가히 귀하다 할 수 있다. 고려 인종 때 중국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방문한 서긍이 한국미술의 품격을 압축 표현한 말이다.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특별전에서 만나는 전시품들 또한 한결 같이 섬세, 화려, 정교, 세밀, 매끈한 세밀가귀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경주박물관 대학의 한 관람자는 “귀한 금동반가상이 신라의 땅 경주에서 전시되어 너무 좋았고, 많은 사람들이 신라 반가사유상을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반가사유상에 매료되어 중앙박물관, 공주박물관까지 찾아가서 봤지만 미륵불의 땅 경주에서 본 반가사유상은 특별전답게 특별했다”는 감흥을 전했다.
김관용 경상북도지사도 금동반가사유상 경주 전시를 기념하여 마지막 날인 내달 2일 경주박물관을 찾을 예정이다.
경주 지역의 한 교육계 관계자는 “학생들이 방학 중이라 금동반가사유상을 단체 관람할 수 없어 아쉽다”면서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전시 기간(11월) 중 한국 미술의 최고봉인 반가사유상을 학생들과 함께 단체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경주에서의 2주간의 짧은 전시 후 국립 중앙박물관으로 돌아갈 ‘금동 반가사유상’. 그를 만나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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